Gun's blog

자본주의에 희망은 있는가

자본주의에 희망은 있는가 4장

자유 자본주의 복지국가가 최선일 때보다 스탈린주의가 최악인 경우가 더 낫다고 말하는 저자. 이는 자본주의가 유지될 때는 그 안에 있기 때문에 바깥에 것을 상상하지 못하고 안주하게 되는데 공산주의를 시도함으로써 실패하는 것은 유토피아라는 특정한 공간을 상상할 수 있게하고 실제 존재하는 사회주의를 생각함과 동시에 이가 가지는 실제의 실패를 고려하고 가늠할 수 있게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와 상반되게 현대의 사람들 특히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에 두려움을 갖는 것은 실패를 눈으로 본 것과 분단국가의 현실에 공산주의의 영향이 미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동시에 저자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데 파시스트의 사건이 아무런 사건이 없는 자본주의적인 생존보다 낫지 않을까? 라고 저자가 말하는 부분에서 왜 힐러리가 아닌 트럼프를 지지하는지 조금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외부에서 봤을 때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면서 변화의 태동이 없는 것보단 ‘사건'이 생기면서 변화와 틀 밖을 상상할 수 있게 하는 행동력? 주관적으론 ‘사건’은 트럼프 자체라고 생각함)

그리고 지젝은 우리에게 두가지의 견해를 보여주는데 첫번째는 슬로터다이크의 해결책이다. 이는 자본주의 안에서 부자가 자발적으로 재산의 일부를 기부하는 형태이다. 하지만 저자는 카네기, 빌게이츠의 예(근로자에 대한 압박, 자본주의의 경쟁에서 잔인한 생존)를 들며 현실적 한계를 지적한다. 두번째는 피케티의 견해이다. 이는 국가의 제도를 통해 부의 재분배로 인한 해결책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현실의 국가의 힘의 한계를 지적하며 불가능을 얘기한다. 저자는 이 두가지 견해의 한계이자 공통점을 말하면서 자본주의 안에서만 답을 찾으려고 하지말고 밖을 상상하며 답을 찾자 라는 결론을 내린다.

결국엔 앞의 두가지는 해결책이 될 수 없고 선물의 경제(국제적)로 회귀하는 것을 해결책으로 삼자고 이야기하는데, 사실 나 같은 경우에도 선물경제를 처음 들었을 때 이게 가능해? 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자본주의에 뼛속까지 물들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와 같이 반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독자를 위해 저자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국제적 개입이 무조건적으로 필요한 문제들을 제시해 준다. 그 중엔 지식재산권, 생태학, 복지국가 같은 예시가 있고, 이들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국제적 개입을 요구있다. 마찬가지로 국제적 선물의 경제 역시 마찬가지일 뿐이라고 얘기한 후 현재로서 이 해결책이 실행되지 않는 이유는 상호관계를 조율하는 규칙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 규칙을 정립하는 것에 대한 답은 미뤄둔다.

저자는 엥겔스, 마르크스, 레닌의 다양한 관점을 전달하면서 식민정책에 대한 시각들을 보여준다. 엥겔스는 거대 국가가 소국들을 흡수하는 과정 속에서 역사적인 진보가 있었고, 그 중엔 여기에 참여한 국가들 (역사적인 국가)들도 있었고, 무력한 방관자였거나, 활발히 반대한 국가들도 있었다고 주장한다.(후자는 사라진다)

마르크스 같은 경우 영국의 식민정책에 의해 인도는 전통적인 제한에서 벗어났고, 영국의 지배에서 자유를 얻기 위한 근대적인 투쟁을 할 수 있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레닌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유럽의 근대적인 면을 러시아에 도입해야하고, 하나의 국가에서의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것이 아니고 국제적인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인도의 얘기로 돌아가보면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배를 통한 시간동안 영어라는 외국어가 들어왔고, 역설적으로 이 영어는 식민 지배에 대한 저항과 자유를 위한 조건으로 사용되었다. 재밌는 부분은 영어가 퍼지면서 카스트 제도로 억압받던 사람들이 해방감을 얻고 자유를 위한 투쟁을 한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글로벌 자본주의가 이기적이고 관대한 개인주의로 몰아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사실은 인도의 식민 통치로 인한 상처를 식민 이전의 현실로 되돌아 가게끔 한다고 해서 상처가 아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고, 오히려 그것은 악몽일 것이다. 상처는 공격했던 창으로만 치료할 수 있다는 오페라의 메세지처럼 전통의 해체는 새로운 해방의 공간을 만들어냈다.

따라서 자유주의자들의 자유주적인 보편성을 무자비하게 상처 없는 보편성이라고 포장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그 폭력에 대해 정확히 문제 제기를 해야하고, 또 한편으로는 상처의 해방적인 측면을 주목해야 한다.

ⓒ 2019. gun all rights reserved